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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乘起信論
大乘起信論(解釋) 다시 不覺을 依支한 연고로 세가지 상을 생하여 저 不覺으로 더불어 相應하여 여의지 않나니 어떠한 것이 셋인고? 첫째는 無明業相이니 不覺을 의지한 연고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설하여 이름을 業이라 함이니 覺 하면 곧 움직이지 아니하나 움직이면 곧 苦가 있으니 果가 因을 여의지 아니한 연고로니라. 둘째는 能見相이니 움직임을 依支한 연고로 능히 보나니 움직이지 아니하면 곧 봄이 없나니라. 세째는 境界相이니 能見을 의지하는 연고로 경계가 망녕되이 나타나나 見을 여의면 곧 境界가 없나니라. 境界緣이 있는 연고로 다시 여섯가지 相이 생함이 니 어떠한 것이 여섯인고? 첫째는 智相이니 境界를 의지해서 마음을 일으켜 사랑함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연고니라. 둘째는 相續相이니 智相을 의지하는 연고로 그 苦樂을 깨닫는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일으켜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세째는 執取相이니 相續을 의지하여 境界를 攀緣해 생각하여 苦樂에 머물러서 마음에 執着을 일으키는 연고니라. 네째는 計名字相이니 망녕된 執相을 의지해서 거짓된 假名言相을 分別하는 연고니라. 다섯째는 起業相이니 名字를 의지해서 이름을 따라 취착하여 가지가지 업을 짓는 연고니라. 여섯째는 業繫苦相이니 業을 의지하여 果報를 받아서 自在하지 못한 연고니라. 마땅히 알라 無明이 능히 一切의 染法을 생하나니 일체의 染法이 다 이 不覺의 相인 연고니라. 다시 覺과 不覺이 두가지의 相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同相이요,둘째는 異相이라.同相이란 것은 비유하면 가지가지 질그릇이 다 한가지 가는 티끌의 性인 相과 같음이니 이와 같이 無漏와 無明의 가지 가지 業幻이 다 한가지 眞如의 性인 相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修多羅 가운데 이 뜻을 의지하여 說하시되 一切衆生이 본래 항상 머물러서 涅槃에 들어감과 菩提의 法이 가히 닦는 상이 아니며 가히 짓는 상도 아닌지라 畢竟에 얻을 것이 없다 하니라.또한 色相을 가히 볼 수 없으나 色相을 봄이 있는 것은 오직 이 染을 따르는 幻의 지은 바요,이 智色 不空의 性은 아님이니,智相은 가히 볼 수 없는 까닭이니라. 異相이란 것은 가지가지 질그릇이 각각 같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와같이 無漏와 無明이 隨染幻의 差別이며 性染幻의 差別인 연고니라. 다시 이 生滅因緣이란 것은 이른바 衆生이 마음을 의지하여 意와 意識이 전하는 연고니라.이 뜻이 어떠한고? 阿梨耶識을 의지하여 無明이 있음을 말했으니 不覺이 일어나서 능히 보고 능히 나투며 능히 境界를 취하여 생각을 일으켜 상속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意라고 함이니라.이 뜻에 다시 다섯가지 이름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다섯인고? 첫째는 이름을 業識이라 함이니,이르되 무명의 힘으로 不覺心이 움직이는 까닭이니라. 둘째는 이름을 轉識이라 함이니,움직이는 마음에 依支하여 能見의 相이 되는 까닭이니라. 세째는 이름을 現識이라 함이니 이른바 능히 一切의 境界를 드러내나니 마치 明鏡이 色像을 나투는 것과 같아서 現識도 또한 그러하여 그 五塵을 따라서 상대되는 것이 이르면 곧 드러내서 앞과 뒤가 없으니 一切의 때에 따라 마음대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는 까닭이니라. 네째는 이름을 智識이라 함이니 이르되 染淨의 法을 分別하는 까닭이니라. 다섯째는 이름을 相續識이라 함이니 생각이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까닭이며,過去無量한 세상의 善과惡의 業을 住持하여 하여금 잃지 않는 까닭 이며,다시 능히 現在와 未來의 苦樂等 果報를 成熟시켜서 서로 어기지 않게 하는 까닭이니 능히 現在와 이미 겪은 일로 하여금 忽然생각하게 하며 미래의 일을 不覺에 말령되이 생각하게 함이니라.이런 연고로 삼계가 虛僞한지라 오직 마음의 지은 바이니 마음을 여의면 곧 六塵의 경계가 없으 리라.이뜻이 어떠한고?일체의 법이 다 마음을 쫓아 일어났으니 妄念이 생한지라 일체의 분별이 곧 自心을 分別함이니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하여 모양을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알라 세간의 일체 境界가 다 衆生의 無明妄心을 依支하여 머물러 가짐을 얻나니라.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 거울가운데 형상과 같아서 體를 가히 얻을 수 없으며,오직 마음이라 허망함이니 마음이 生하면 가지가지의 法이 生하고 마음이 滅하면 가지 가지의 法이 滅하는 연고니라.다시 의식이라 말함은 곧 이 相續識이니 모든 凡夫가 取着함이 더욱 깊음을 의지하여 我와 我所를 計較하여 六塵을 分別할새 이름을 意識이라 함이요.또한 이름을 分別識이라 하며 또 다시 이름을 分別事識이라 설함이니 이 識은 見愛(見惑과 愛惑)의 煩惱를 의지하여 增長하는 뜻인 연고니라. 無明熏習을 의지하여 일어난바 식이라는 것은 凡夫의 능히 알바가 아니며 또한 二乘의 智慧로 깨달을 바가 아니니 이르되 菩薩을 의지할진대 처음에 바로 믿음을 쫓아서 發心하여 觀察해서 만약 法身을 證得했을지라도 少分만 얻어 알것이며 이에 보살의 究竟地에 이러르서도 능히 다 알지 못할 것이요 오직 부처님이라야 다 아나니라.무슨 까닭인고?이 마음이 본래부터 自性이 淸淨함이로대 無明이 있는지라 無明의 染한 바가 되어 그 물들어진 마음이 있으니 비록 물든 마음이 있으마(本覺의 마음)항상해서 變하지 아니함이니 이런 까닭으로 이 뜻은 오직 부처님이라야 능히 알 수 있나니라. 이른바 心性이 항상 無念인 연고로 이름을 不變이라 함이요 一法界를 통달 하지 못한 까닭으로 마음이 서로 응하지 못하여 홀연히 생각이 일어난 것을 이름을 무명이라 함이니라. 染心이란 것이 여섯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인고? 첫째는 執相應染이니 二乘의 解脫과 信相應地를 의지해서 멀리 여의는 연고요. 둘째는 不斷相應染이니 信相應地를 의지해서 方便을 修學하여 漸漸 능히 (相續識)버려서 淨心地를 얻어 究竟에 여의는 연고요. 셋째는 分別地相應染이니 具戒地를 의지하여 漸漸여의어서 이에 無相方便地에 이르러 구경에 여의는 연고요. 넷째는 現色不相應染이니 色自在地를 의지해서 능히 여의는 연고요. 다섯째는 能見心不相應染이니 心自在地를 의지해서 능히 여의는 연고요. 여섯째는 根本業不相應染이니 菩薩의 盡地를 의지해서 如來地에 들어 가서 능히 여의는 연고니라. 一法界를 了達하지 못한다는 뜻은 信相應地로 부터 觀察하여 배워 끊어며 淨心地에 들어가서 분을 따라 여의며 이에 如來地에 이르러 能히 究竟에 여의는 연고니라. 相應이라 말하는 뜻은 이르되 心과 念法이 다르니 染과 淨의 差別을 의지하여 知相과 緣相이 같은 연고며 不相應이란 듯은 이르되 마음 그대로 不覺이라 항상 별다름이 없어서 知相과 緣相이 같지 아니한 연고니라. 또 染心의 뜻이란 것은 이름을 煩惱라 함이니 능히 眞如의 根本智를 장애하는 연고니라. 無明의 뜻이란 것은 이름을 智라 함이니 능히 세간의 自然業智를 障碍하는 연 고니라.이 뜻이 어떠한고?染心을 依支하여 능히 보고 능히 나타나며 망녕되이 경계를 취하여 평등한 性을 어기는 까닭이며,一切法이 항상 고요해서 일어난 상이 없으나 無明不覺이 망녕되이 법으로 더불어 어기는 연고로 능히 세간의 一切境界를 隨順해서 가지 가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다시 生滅의 相을 分別한다는 것은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序니 마음으로 더불어 相應하는 연고요, 둘째는 細니 마음으로 더불어 相應하지 않는 연고니라. 또 序의 가운데 序는 凡夫의 境界요, 序의 가운데 細와 細의 가운데 序는 菩薩의 境界요, 細의 가운데 細는 부처님의 경계니라. 이 두가지 生滅이 無明熏習을 의지하여 있으니 이른바 因을 의지하고 緣을 의지함이니라. 因을 의지한다는 것은 不覺의 듯인 연고요, 緣을 의지한다고 한다는 것은 망녕되이 境界를 짓는다는 뜻인 연고니라. 만약 因이 滅하면 緣도 滅하나니 因이 멸한 연고로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이 멸함이요, 緣이 멸하는 연고로 서로 응하는 마음이 멸함이니라. 묻되 만약 마음이 滅한다면 어떻게 相續하며 만약 相續한다면 어떻게 究竟滅을 말하리요? 답하되 말한바 滅이란 것은 오직 心相이 멸할지언정 心體가 멸하는 것은 아님이니 마치 바람이 물을 의지하여 움직이는 相이 있으니 만약 물이 멸할진대 風相이 끊어져 의지할 바가 없을 것이어니와 물이 멸하지 아니할새 風相이 상속하나니 오직 바람이 멸하는 연고로 움직이는 모양이 따라서 멸할지언정 이 물이 멸하는 것은 아님이니라. 無明도 또한 그러해서 心體를 依支하여 움직이나니 만약 心體가 멸할 진대 衆生이 斷絶해서 의지할바가 없을 것이어니와 체가 멸하지 아니 할새 마음이 상속함을 얻나니 오직 어리석은 것만 멸하는 연고로 심상이 따라서 滅할지언정 心智는 멸하지 아니함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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